<사진 출처 : 12up.com>
내가 메이저리그를 처음 본건 중학교 때 AFKN에 나온 LA다저스 경기였고,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KBS가 박찬호 경기를 생중계하며 본격적으로 미국 야구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나도 흔히 말하는 '박찬호 키즈' 중의 하나다. 당시 응원하던 스포츠팀 (야구: 해태 타이거즈, 농구: 기아자동차, 배구: 고려증권) 이 모두 IMF 사태의 직격탄을 맞고 사그라드는 통에 나의 열정은 온통 박찬호와 다저스에 집중되었던 것 같다.
그 때 메이저리그 사이트에서 칼럼 쓴다고 인터넷과 야구 서적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칼 립켄 주니어의 2632경기 연속 출장기록 이야기. 꾸준함과 성실함을 상징하는 그의 이야기는 나의 인생관과도 어느정도 맞아 떨어졌고, 당시 메이저리그 구장에 관심이 많던 나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홈 구장 캠든 야즈가 야구 역사에 남긴 족적에도 매료되며 볼티모어를 나의 팬 구단으로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2001년의 볼티모어는 그야말로 암흑기. 립켄 말고 남아있는 선수는 퇴물들에 불과했고, 돈질 실컷 했다 망해 방향성을 못 찾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야구팀이었다. 목불인견의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팬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국방의 의무 덕분... 그렇게 2년여 야구 자체를 보기 힘든 상황에서 간간히 편지 같은걸로 볼티모어 소식을 전해주던 지인들 덕에 한국에서 보기 드문 볼티모어 팬이 되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생에서 직장인이 될 때까지 매년 성적은 암울했지만 바쁜 생활이 야구에만 집중할 수 없게 만들어줬고 사회인야구를 시작하며 보는 야구에 대한 갈증도 해소가 되다보니 못하면 그냥 덮고 반짝 잘하면 그걸로 즐거워 하던 소박한 팬질이 계속되었고 그런 오랜 기다림 끝에 2010년 드디어 여름 휴가를 내어 볼티모어 경기를 보러 캠든 야드를 가는 기쁜 순간도 맞이했다. 1경기밖에 보고 오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웠지만...
이후 벅 쇼월터 감독의 지도력이 발휘되고 앤디 맥페일 전 단장이 이뤄놓은 팀 재건의 토대가 시너지 효과를 이루며 평생 못 볼것 같았던 볼티모어의 지구 우승,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영광스런 장면도 보게 됐다.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가진 못했지만 항시 꼴찌 후보였던 내 응원팀이 10월에도 야구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레기만 했다.
하지만 정대현, 김현수, 윤석민 등 볼티모어와 연을 맺은 선수들이 좋지 못한 결과를 낳으며 볼티모어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싫어하는 구단이 되어버렸고 다시 성적은 곤두박질 치며 다시 처음 볼티모어를 응원하던 시절로 돌아가 버렸다. 최근 볼티모어 팬들을 몇명 알게 되며 이 암울한 2019년에 끝까지 볼티모어 게임을 시청하는 날이 많아지는걸 보면 이제 볼티모어는 더욱 나와 밀접한 사이가 되어가는 것 같단 느낌이 든다.
꾸준함과 성실함을 무기로 했던 구단의 레전드, 199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대거 만들어진 메이저리그 신 구장의 롤 모델이 된 캠든 야즈 덕분에 난 19년째 볼티모어 팬이 되어있다. 앞으로도 응원팀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죽기 전에는 볼티모어가 꼭 월드시리즈 우승을 한 10번은 하길 바라며... 앞으로 다시 볼티모어 얘기를 채워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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